'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14건

    납에서 눈꽃이 나리네

     

        연백 (2)

        

      Flake White 와 Dutch Process

     

    여기서는 대표적인 연백 제조법으로 알려져있는 네덜란드식 제조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방법은 많은 곳에서 인용이 되었는데,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책이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2005년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컬러여행’(아트북스, Victoria Finlay) 에서 저자가 그 과정을 재미있게 기술해놓은 것이 있어 잠시 소개해보겠습니다.

     

    " 네덜란드 화가들은 연백을 만들기 위해 두 개의 항아리를 준비했다하나에 납을 넣고 다른 하나에 포도주를 발효한 식초를 넣는다그런 식으로 수십 개의 항아리들을 준비한 다음 비밀 재료를 추가한다그 재료는 바로 목장에서 가져온 분뇨이다.분뇨를 항아리 주위에 쌓아놓는 이유는 열을 발생시켜 산을 증발하게 만들고이산화탄소를 배출시켜 초산연을 탄산연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였다완전히 차단된 방에 90일간 방치해둔 다음에는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 한 명이 들어가야한다.아무도 자진해서 들어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짚으로 제비뽑기를 할 수 밖에 없다.결국 길이가 짧은 짚을 고른 도제가 그 일을 맡게 되고문을 여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아마 그 일을 처음 맡았다면 더더욱 경악했을 것이다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탁하고 악취 나는 공기와 뜨거운 열기흐물흐물해져 사방으로 흐르는 배설물포도주의 시큼한 냄새와 금속의 독성이 마치 연금술사가 마법을 부린 현장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을 것이다그러나하얀색 침전물은 회색 금속에서 벗겨져 항아리 속에 고여 있었다그야말로 더러움과 악취 속에서 티 없이 깨끗한 하얀색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이렇든 배설물로 설탕을 만드는 일은 물감상자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작은 기적 중의 하나이다. "

                                                                 -      컬러여행, P. 174

     

     약간의 상상이 곁들여지긴 했지만대략 이런 방식으로 연백이 제조되었습니다이런 방식은 네덜란드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대략적인 과정은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전해내려온 방식과 비슷하지만약간의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긴 합니다이것은 차후에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에 Rublev (루블료프라는 유화물감 브랜드를 생산하는 Natural Pigment 라는 회사가 있습니다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사용되는 미술재료나 안료 등을 연구하고 재현하거나 만들기도 하는 회사인데, 러시아 성상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 (Андрей Рублёв  Andrei Rublev)의 이름에서 따온 듯한 브랜드 이름도 매우 특이합니다. 약 20년전 쯤  러시아의 거장 따르꼽스끼 영화가 거짓말처럼 개봉관에서 흥행할 때동명의 비디오로 출시되기도 했는데요난해함과 성스러움과 지루함이 시종일관 지속되는 뭐 그런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아무튼!

     

     이 회사에서 몇 년 전 실제로 이 네덜란드 방식을 재현해서 자사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별걸 다 재현한다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럽기도 하더군요이렇게 함부로 올리는 것이 저작권상으로 문제가 될 법도 하지만혼자보기 아까우니 일단 올려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Dutch process  Stack process 라고도 하는데보통은 후자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밑에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쉬운데납과 아세트산(강한 식초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을 화분 모양의 도자기 그릇에 넣어 부식을 시켰습니다그리고부식을 위해 그 도기를 삼나무 껍질과 분뇨를 섞어놓은 곳 위에 놓았습니다그 나무껍질과 분뇨를 섞어서 마련해 놓고 도기를 배치해 놓은 그 곳을 Blue bed즉 푸른 침대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stack은 그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16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시행되었던 제조법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하는데,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진 및 내용은  www.naturalpigments.com 에서 가져왔습니다.

     

    1.  먼저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헛간을 짓습니다.

     

     

    2. 불순물을 제거한 얇은 납판을 길게 잘라 나선형으로 말아놓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런 납조각을영미 지역에서는 버클(buckle) 이라 불린 납덩이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3. 준비된 도자기 그릇 높이의 1/3 정도까지 찰 정도로 식초를 넣은 뒤, 식초 위에 설치된 지지대 위에 코일형태의 납조각을 올려놓습니다. 납의 양이나 식초의 양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조건에 따라 도기 색깔을 붉은색과 흰색으로 차이를 주었으며, 부식과정의 차이를 보기 위해 전해내려오는 방법대로 몇몇의 도기에는 뚜껑을 덮었습니다.

     

    4. 근처 농가에서 모은 말 분뇨를 삼나무 껍질과 섞어 실험이 이루어질 곳에 깔아놓습니다. 원래 이 시기에는 분뇨만 쌓아 놓았는데, 18세기부터는 원활한 통풍과 배수를 위해 삼나무껍질과 섞어서 사용하는 방법이 쓰였습니다

      

    5.  그 위에 납조각들이 담긴 도기들을 차례대로 배열해놓습니다.

     

     

    6. 500kg 정도의 납이 실험에 사용되었는데, 이 납조각들이 부식하여 연백이 되는데는 약 12주 정도가 걸립니다. 분뇨의 부패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와  열에 의해 가열된 식초의 증기가 납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연백이라 불리워질 흰색분말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7.  2주 후의 모습입니다. 내부의 식초 냄새는 처음만큼 세지는 않지만, 여전히 강한 냄새를 유지하고 있고, 퇴비의 온도도 점점 상승하고 있으며, 내부의 습도는 매우 높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온도와 습도 유지가 부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의 유지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하는군요.

     

     8. 위의 사진을 조금 더 가까이 잡아 부식 정도를 살펴본 것입니다. 벌써 많이 부식이 되긴 했지만, 고르게 부식되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균일하게 부식이 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전사람들이 꽤나 노력을 했다고 하는데, 특별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9. 12주가 지난뒤, 연백을 납에서 수거하기 바로 전의 모습입니다. 부식이 더 많이 진행된 모습입니다.

     

     

    10.  가까이서 본 모습입니다. 납 코일의 윗부분을 따라 변색이 된 모습도 보입니다.

     

     11.   납코일을 망치로 두들겨 부식된 연백을 털어냅니다. 떨어진 연백의 모습입니다.

     

     연백의 명칭 중 Flake white 는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연백조각의 모습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각, 파편이란 뜻을 가진 flake는 우리가 시리얼이라 부르는 콘 플레이크 (corn flake) 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되는데요, 저 모습도 어찌보니 흰색 콘플레이크 같기도 한 것 같습니다.

     

    연백 조각들은 이제 물에 담가 불순물을 제거한 후에 햇볕에 건조를 시킵니다. 건조된 연백을 분말로 빻아서 안료로 사용하게 되는데, 요즘에는 기계가 좋아 아주 미세한 분말로 제조가 가능하지만, 예전에는 분말이 아주 곱지도 않고 일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연백의 질은 입자가 거칠었던 이전의 것이 훨씬 좋다고 하는군요. 

     

     대표적인 연백 제조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연백이 납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여러 위험 요소들이 존재하고, 그런 이유로 지금은 생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오늘 살펴본 제조법에 대한 약간의 부연설명과 함께 연백의 여러가지 다른 면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도서

    컬러여행 (Victoria Finlay 저, 아트북스)

     

    참고 사이트

    http://www.naturalpigments.com/art-supply-education/white-lead-historical

     

    http://www.geoffreylaurence.com/leadwhite.html

     

    'white > cremnitz wh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어도 좋아  (0) 2014.04.29
    빛의 이면  (0) 2014.04.29
    반복과 변주  (0) 2014.04.28
    네 시작은 창대하도다  (0) 2014.04.28
    화이트 오딧세이  (0) 2014.04.16

    화이트 오딧세이

     

     

          연백 (1)

     

     그림을 그리려 처음 종이나 캔버스를 마주할 때 시야를 가득 채우는, 화면 가득한 흰색은 누구에게나 설레임과 기대의 시작인 듯 합니다. 동시에 앞으로 쉴새없이 이어질 절망과 고뇌의 전주곡이기도 하겠구요. 한편 캔버스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주름없이 펼쳐진 흰색 바탕은 한 과정의 기분좋은 결말이기도 합니다. 흰색이 가지고 있는 시작, 마지막, 다시 새로운 시작, 순결함 같은 그런 이미지들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되는 듯 합니다.

     

     흰색은 또한 색의 시작이면서, ‘색이 없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기본색 중 하나인 이 흰색을 제조하기 위해 고대부터 많은 방법들이 연구되었는데요, 깨끗하기 그지 없는 흰색의 제조방법은 그다지 깨끗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흰색은 꽤나 아이러니한 색상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물감을 판매하다보면, 생산은 되지만 잘 판매가 되지 않는 색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일 많이 쓰이는 색 중 하나인 화이트를 예로 들어보면, 흔히 화이트는 징크 (zinc) 와 티타늄 (titanium)을 주로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징크는 혼색용으로, 티타늄은 흰색 자체를 표현할 때 쓰는 것으로 대략 구분을 합니다. 그런데, 화이트 사이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긴 하지만, 거의 찾는 사람들이 없는 색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꽤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홀베인(Holbein) 에서 나오는 실버화이트(Silver white)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저 은색이 좀 가미된 흰색인가보다라고 단순히 생각을 했는데,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는 많이들 쓰는가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근래에는 전세계의 메이저 브랜드들이 거의 다 국내에 수입되고 있는데, 세계 최초의 유화물감이라는 올드 홀랜드 (Old Holland)의 색구성을 보고 있으면, 화이트가 5종류나 됩니다. 티타늄과 징크와 그 둘이 섞인 믹스 화이트 외에 Cremnitz white Flake white 라는 이름도 그 틈에 끼어있습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이나 판매하는 사람이나 그다지 신경을 안쓰는 그 흰색들로부터 흰색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연백(鉛白, Lead White)

     

    모든 물감이 튜브에 담겨져 진열되고 있는 지금에야 색을 만들고, 사용하는 일보다는 작품에 어떤 색이 어울릴까를 고민하는게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색을 일일이 만들어 써야 했던 과거에는 색을 만드는 일 역시 만만치 않게 힘든일이었을 겁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흰색은 가장 많이 쓰이는 색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흰색을 어떻게 만들어썼을까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방법이 을 이용한 방법이었습니다. 호칭은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명칭만 보자면, 우리말로는 연백(鉛白) 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호분(胡粉)오늘날 우리가 쓰는 그 호분과는 별개입니다-으로 주로 불리웠습니다. 연백의 뜻은 납 연 ()에 흰 백 (), 말 그대로 납으로 만든 흰색이란 뜻입니다.

     

    서양에서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는데, 위에서 말한 cremnitz white, flake white, silver white는 모두 이 연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세가지 용어가 근래까지도 연백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남아있습니다. 요즘에는 각각 성분에 약간씩 차이를 주어 명칭에 따라 구성요소가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연백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시면 큰 무리가 없습니다.

     

    연백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아주 질좋고 훌륭한 화이트입니다. 한편 독이 든 사과처럼 그 좋은 질감만큼 치명적이고, 그래서 논란도 많은 화이트입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시대에서부터 사용되었는데, 16~19세기 유화가 전성기를 누리던 유럽에서, 특히 렘브란트로 대표되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연백이 가장 유명합니다. 당시에 많이 쓰이기도 했고, 연백의 질이 좋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당시의 연백 제조방법이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Dutch process’, ‘네덜란드식 제조법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방식은 대표적인 연백 제조 방식인 동시에 질좋은 연백을 만들 수 있어 꽤 오랜 시간동안 사용되었습니다. 이 방법은 동시에 꽤나 악명이 높았는데, 그 악명높은 제조방법을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연백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연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연백

     

    'white > cremnitz wh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어도 좋아  (0) 2014.04.29
    빛의 이면  (0) 2014.04.29
    반복과 변주  (0) 2014.04.28
    네 시작은 창대하도다  (0) 2014.04.28
    납에서 눈꽃이 나리네  (0) 201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