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cremnitz white | 2014. 4. 29. 18:58
연백 (6)
치명적인 흰색 가루
납중독의 역사는 납의 역사과 그 결을 함께합니다. 납중독의 역사 역시 매우 오래되었다는 말이지요. 납은 지금도 여러방면에 사용되어지고 있지만, 독성 때문에 전통적인 용도였던 수도관, 안료, 가솔린 첨가제 등의 사용은 법규로 제한받고 있습니다. 현재는 주로 전지나 원자로의 방사선 차단제, 고압전선 피복제, 탄환 등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납은 라틴어로 'plumbum' 이라 했는데, 납의 원소기호인 Pb가 여기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배관공을 의미하는 영어의 plumber도 역시 과거에 수도관을 납으로 만든 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납이 이렇게 고대에서부터 사용되었던 것은 무르고 녹는점이 낮아 가공이 쉽고, 잘 부식되지 않기 때문인데, 특히 로마시대에는 수도관과 배관시설, 안료, 그릇 등에 두루두루 쓰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의 납중독이 로마 제국 쇠퇴의 한 원인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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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에서 파생되어 나온 연백 역시 납중독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연백의 수많은 명칭 중에 Venice White 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Venice White 보다는 Venice Powder 라는 말이 더 알려져 있는데, 이 베니스 파우더가 여성들의 화장용으로 쓰인 연백 가루 입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Venice Powder가 고급 화장품의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합니다. 연백이 도포력이 있고 부드럽고 유연해서 연백 가루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여성들의 화장용품으로 쓰여졌다고 하는데, 그 덕에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망가진 예는 밤하늘의 별만큼 수없이 많기도 합니다. 이집트에서 뿐 아니라 로마의 여성들도 이 백색가루를 매우 선호하였고, 일본의 게이샤들도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징그럽도록 새하얀 피부의 연출을 위해 이 납가루를 두껍게 발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치명적인 화장품의 폐해는 21세기에 들어서도 계속됩니다. 이 자리에서는 연백으로 흥했다 망한 몇가지 사례들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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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의 폐해로 나타나는 증상은 수없이 많습니다. 발암물질을 유발하기도 하고, 뇌졸증, 간질, 마비, 왜소성장 등 일일이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여성의 화장품으로 쓰인 이 연백 가루를 장시간 사용하면 얼굴이 창백해지고, 심해지면 신장 질환이나 변비등의 질병과 탈모 등의 증상까지 심해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미 유명한 사실입니다. 화장으로 인한 납중독을 언급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는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1)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상시에도 1인치의 두께로 얼굴에 연백을 발랐다고 알려져 있는데, 창백하고 하얀 피부를 과시한 여왕의 화장법이 귀부인들의 모범이 되었을 정도라고 하는군요. 당시 유럽에서는 새하얀 피부에 볼과 입술을 봉긋한 연지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화장이 유행이었는데, 이 연지 또한 수은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정말 목숨걸고 화장하는 셈인 듯 합니다.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피부가 거칠어지고, 납으로 인해 치아까지 상하게 되었는데, 노년에 그것을 감추려 더더욱 진하게 화장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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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벤트리 백작의 부인인 마리아 거닝은 당대의 미녀로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베니스파우더를 바른 것으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결국 피부는 급격히 노화되었고, 자신의 피부를 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려워 자신의 방을 어둡게 하라고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30이 못되어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그가 죽었을 때의 모습은 대머리에 치아가 하나도 없는 추한 모습이어서 치명적인 연백의 폐해를 죽음으로 알렸다고 합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연백은 화장품으로 두루 제조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의 미국의 화장품 제조 회사인 레어드(Laird) 사는 블룸 오브 유스 (Bloom of Youth) 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생산했습니다. 이 회사는 당시의 패션 잡지 <뉴욕>에 만화형식으로 자사의 화장품을 광고하곤 했는데, 젊음의 비법으로 블룸 오브 유스의 파운데이션을 홍보했다고 합니다. 블룸 오브 유스의 화운데이션은 당시의 트렌드대로 연백을 사용하였는데, 결국 그 화장품을 사용한 사람들이 납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그 판매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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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이외에 연백은 페인트로서도 여러 폐해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벽이나 집에 사용되었던 흰색은 연백을 이용한 유성페인트였는데, 이 페인트가 노후해지고 벗겨짐에 따라 페인트에 있는 납성분의 유독물질이 논란를 일으켰습니다.
1907년 미국의 National Lead Company가 설립한 Dutch Boy라는 페인트 회사가 있습니다. 이름에서 느낌이 오듯이 이들은 공공연히 Dutch Process 를 표준으로 삼아 페인트를 만들고 있음을 강조하며 홍보했습니다. 주로 납으로 만드는 페인트를 생산했는데, 연백도 그들의 대표적인 상품 중에 하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위험성 때문에 1977년 주택이나 공공건물, 또 가구나 장난감 등 생활과 밀접한 물건에 연백 사용을 금지했는데, 그 이후로 연백의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이 회사는 Dutch Boy 라는 브랜드를 유지하며 페인트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물론 납성분이 없는 페인트를 만들고 있겠지요. 21세기 들어 미주와 유럽 지역에서 납성분에 대한 규제법안이 상정되고, 규제가 까다로워 지면서 현재는 위에서 언급한 몇몇의 제한된 분야에만 납이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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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연백으로 만든 화장품이 있었습니다. 물론 납성분의 폐해로 오래지 않아 사라지긴 했습니다. 바로 박가분 (朴家粉)이 그것인데요, 다른 뜻이 아니고 박씨가 만든 분 이라는 뜻입니다. 박가분을 만든 사람은 보부상이었다가 포목상으로 돈을 번 박승직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박승직의 부인인 정정숙이라는 사람이 지금 충무로 근처인 입정동에서 한 노파가 이 분을 파는 것을 보고 아낙들을 모아 사업화 하여 큰돈을 벌었습니다. 방물장수를 통해 판매한 이 박가분은 당대의 최고의 히트 상품 중에 하나로 등극하기에 이르러 1920년에는 상표등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한갑에 50전이던 박가분은 하루에 1만갑 이상 판매되는 대표적인 화장품이 되기도 했는데, 당시에 볼 수 없었던 상자에 넣어 판매하는 포장방식으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1930년대가 들어서자 납성분이 피부에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고, 급기야 한 기생이 박가분으로 피부를 망쳤다고 고소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여 1937년 시장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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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이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reativemd&logNo=120052840089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4&contents_id=25258&leafId=44
http://ko.wikipedia.org/wiki/%EB%B0%95%EA%B0%80%EB%B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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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cremnitz white | 2014. 4. 29. 14:39
연백 (5)
물감으로서의 연백
21세기 들어 대부분 납중독의 위험 때문에 연백의 생산과 판매가 금지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림물감으로서의 안료는 언제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 수요가 일반적이거나 많은 양이 아니기 때문에, 생산이 금지되었다는 것은 곧 산업용 도료로서의 생산이 금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지고보면 연백이 회화에 사용되어진 총량은 사실 얼마되지 않겠지만, 지금까지 연백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과거에 그려진 회화작품 밖에는 없을 듯 합니다. 그런 점이 또 산업과 예술의 차이점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연백은 그림물감으로서도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19세기에 징크화이트가 나오기 전까지 서양에서 가장 많이 쓰인 백색이 연백이라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서양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딱히 대안이 없기도 했겠지만, 연백이 이토록 큰 사랑을 받은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앞에서 본 Stack Process 를 재현한 Natural Pigment 사가 본인들이 만든 연백을 홍보하기 위해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걸 보면 연백이 화가들이 왜그리 좋아했는지 대충 느낌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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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적인 면에서는 불투명하기도 하고, 다른 화이트와 비교해봤을 때 비교적 따뜻한 톤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브랜드마다 조금씩 톤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징크와 티타늄과 비교해보면 아주 미세하게 reddish-yellow 톤이 서려있다고 합니다.
검색을 하다가 Julie Susanne 라는 사람의 블로그에서 연백의 혼색실험을 한 사진을 발견하였는데,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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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 블루와 세개의 화이트를 같은 양을 사용하여 혼색을 했는데, 프러시안 블루는 Gamblin 사의 제품을 사용하였고, 티타늄과 징크는 우리나라에도 얼마전 들어온 Williamsburg 사의 제품을, 그리고 연백은 미국의 RGB 사의 제품을 사용하였습니다. RGB 사도 Natural Pigment 사와 같이 과거의 방법으로 수제로 물감을 만드는 회사 중 하나입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연백과 혼색한 색이 색의 톤에서는 징크보다 우월하고 채도에서는 티타늄보다 훌륭하다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각자의 취향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 사진만으로도 고전적인 유화에서 흰색을 사용할 때 연백만큼 적당한 색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는 들기도 하는군요.
화이트는 자연조명이나 그림의 하이라이트를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었는데, 대상의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했고, 그 빛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당시에 연백만큼 효과적인 도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백은 많은 화가들에 의해 사용되었지만, 보통 Dutch Process와 연관하여 네덜란드 화가인 렘브란트 (Remnrandt, 1606~1669)가 자주 인용되어집니다. 아마도 연백의 상징적인 본거지인 네덜란드에서 연백의 전성시대에 활동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렘브란트의 작품들이 어둠과 빛을 효과적으로 사용하 대표적인 화가이고, 연백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화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렘브란트,>
렘브란트 뿐 아니라 당시의 모든 화가들이 빛을 표현하기 위해 연백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특히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의 구도는 당시 그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특히 렘브란트의 작품에 쓰인 연백의 질감은 당시의 다른 작가들의 것보다도 섬세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정물이 유행하였는데, 대부분의 정물화에서 하이라이트나 생생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연백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빛을 비롯하여 식탁보의 질감이나 컵이나 과일의 하이라이트 부분에 모두 연백이 효과적으로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유럽 대륙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연백이 매우 흔한 재료가 되었는데, 19세기 미국 작품 중 제임스 맥닐 휘슬러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의 대표적인 작품인 '하얀색 교향곡'에는 연백이 그림 전체에 사용되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862,>
19세기 대표적 미국 작가인 휘슬러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였는데, 위의 작품에서는 모델의 흰색 옷과 주름을 표현하기 위해 거침없이 연백을 사용하였습니다. 휘슬러는 1896년 암에 걸려 죽는데, 연백을 즐겨 사용하던 휘슬러가 납가루를 너무 많이 흡입하여 결국 암에 걸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납중독으로 죽음에까지 이른 예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연백을 이야기할 때 역시 납중독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는 이 납중독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사이트
http://en.wikipedia.org/wiki/White_lead
http://juliesusanne.blogspot.kr/search/label/White%20Paint
http://www.essentialvermeer.com/palette/palette_white_lea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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