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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색의 명암

     

       징크화이트 (4)

     

      징크화이트의 장점과 단점

     

     징크화이트는 그 태생부터 연백의 대체제로 탄생한 면이 크기 때문에, 징크화이트의 장점은 필연적으로 연백의 단점에 대비되어 부각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연백의 치명적인 단점인 독성이 없어 중독의 위험이 없다는 것과 황을 포함한 대기나 다른 안료의 영향으로 흑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당시에는 획기적인 백색안료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연백만큼 불투명하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아 다른 색들과 어우러져 섬세한 뉘앙스를 표현하는데에 매우 적합한 화이트입니다. 초기에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차가운 색조와 투명함은 도리어 다른 색들의 다양한 얼굴들을 편견없이 일깨워 캔버스 위에 구현해주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질감을 징크화이트에 불어넣어준 산파 역할을 함 셈이지요.  그 밖에도 산화아연은 자외선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여러종류의 코팅제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안료로서의 징크화이트도 이런 성질 덕에 태양광에 노출되어도 거의 영구적으로 색조가 유지되는 장점이 있어 야외에 쓰이는 도료나 벽화 등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징크화이트의 치명적인 단점은 앞에서 박수근의 빨래터의 예에서 봤듯이 시간이 지나면 균열과 박락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건조 후에 필름의 유연성이 현저히 떨어져 깨지기 쉬운 표면을 형성하기 때문에 작품 보존의 측면에 있어서는 아주 취약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캔버스의 밑칠 작업용으로 화이트를 사용했는데, 징크화이트의 출현 이후 자연스레 밑칠용 화이트는 연백에서 징크화이트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징크화이트가 유화로 생산되고 급격히 퍼진 1890년대나 1900년대 초반에 그려진 유화작품은 3,40년이 지난 후 눈에 띄는 갈라짐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균열은 특히 징크화이트가 밑칠용으로 사용되거나, 설경처럼 과도하게 사용된 부분에서 심각하게 나타난 반면, 적당히 혼색에 쓰인 부분에서는 전혀 갈라짐이 나타나지 않아 이후 징크화이트의 용도를 뚜렷하게 규정해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생산 초기에 징크화이트는 자외선을 흡수해서 표면의 노화를 막는 산화아연의 성질 때문에 산업용 도료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균열의 문제점이 부각된 후에 용도가 조금 바뀌게 됩니다. 고대에 의료용 연고로도 쓰였듯이, 산화아연은 자외선 흡수 이외에도 부식을 방지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런 성질로 인해 이후에는 직접 안료로 쓰이기보다는, 방부제 용도로 안료의 첨가제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한편, 징크화이트는 오일과 섞였을 때, 다른 색상에 비해 건조시간이 비교적 오래걸립니다. 이 단점은  한편으로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표현할 때 수정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으로 승화될 수도 있지만, 이 늦은 건조시간은 징크화이트의 치명적 단점인 갈라짐의 문제와 직접 연결되기도 합니다. 

     

     밑칠된 징크화이트는 건조시간이 많이 늦어서 속까지 완전히 마르기 전에 겉에만 마른 채로 그 위에 작업을 하기가 쉽습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작업을 하게 되면 위에 칠해진 다른 색상보다 밑칠된 징크화이트가 늦게 건조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경우에 밑칠된  표면이 수축이 되면서 점차 그림의 표면이 갈라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짐에는 이런 건조시간의 문제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긴 합니다.

     

     징크화이트의 재료인 산화아연 가루는 공기중에 노출되었을 때, 공기 중의 습기를 흡수하여 끈적끈적하게 변화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런 '끈끈한' 산화아연을 오일과 섞어서 유화물감을 만들면 습기가 오일에 갇히게 되는데, 이 습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마르게 되면 표면이 수축하게 되고, 그 결과로 균열과 박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균열을 막기 위해서는 산화아연을 제조할 때 더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습기를 완전히 제거하면 되는데 일반적인 안료제조업자들은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비용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섬아연석

     

     참고로 안료로 쓰이는 산화아연은 앞에서 징크화이트를 유화로 처음 생산한 르클레어가 발견한 방식으로 제조됩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식 (French Process)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아연제조에 많이 사용되는 섬아연석으로 50%정도의 금속아연으로 농축시킨 후 구워서 산화아연으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후에 미국에서 직접 섬아연석을 구워 산화아연을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는데, 미국 방식과 대비해서 간접방식 (Indirect Process) 이라고도 불리워집니다. 습기가 산화아연에 남아있는 것은 아마 이 과정에서 완전히 건조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시간이 많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징크화이트에 갈라짐의 문제가 남아있는 것을 보면 생산과정이 과거와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중국풍의 정물 (Still-life with Chinoiseries, 1906)

     

     

     2013년 벨기에의 앤트워프(요즘에는 '안트베르펜' 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왕립 박물관에서는 벨기에 화가인 제임스 앤서(James Sidney Edouard, Baron Ensor, 1860~1949)의 작품에 대한 연구를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그 프로젝트에서 발행한 보고서 중에 연백과 징크화이트에 대한 연구가 있는데, 여기에서도 여태까지 언급한 징크의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앤서는 당대의 다른화가처럼 연백과 징크를 같이 쓴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 성분 분석을 위해 X레이 형광분석기가 사용되었습니다. 위의 그림을 보면 위의 그림은 원래상태의 작품이고,  아래의 그림은 형광분석기로 촬영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형광분석기로 비추었을 때, 징크화이트가 쓰인 부분은 녹청색으로 나타납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이는 인물 좌우의 청록색 배경이 밑칠로 징크화이트가 쓰인 부분입니다. 그림에서 옷을 표현한 붉은 부분과 오른쪽의 붉은 라인 안쪽은 연백을 사용한 부분인데, 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징크화이트가 쓰였습니다. 인물을 자세히 뜯어보면 얼굴과 다리 부분에 갈라짐이 많은 것이 발견되는데, 아래 그림에서 확인해보면 이 부분은 밑칠로 연백이 아닌 징크가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징크화이트가 갈라짐의 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자료이지요.

     

     

    중국풍의 정물 (Still-life with Chinoiseries, 1906)

     

     


     이 작품은 앤서가 화이트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위의 그림과 같은 이유로 배경 전반에 징크화이트가 쓰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사람의 피부 조금 다르게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앤서의 색채 사용을 짐작할 수 있는지점이기도 한대요, 사람의 피부에는 전통적인 방식인 연백에 핑크와 블루톤을 섞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앤서는 바탕칠에는 당시에 값이 쌌던 징크를 사용했고, 디테일을 표현할 때는 표현력이 좋은 연백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펠리아 (John Everett Millais 1851~52)

     

     위의 그림은 영국화가 밀래이의 '오펠리아의 죽음' 이라는 작품입니다. 정교하고 빽빽한 사실적 묘사로 유명한 이 화가는 햄릿의 오펠리아의 죽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물을 받은 욕조에 모델을 몇시간씩이나 누워있게 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 그림에도 징크화이트로 밑칠한 부분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균열이 생긴 부분이 존재하지 않아 징크화이트의 균열이 과연 어떻게 진행되는지, 과연 일방적으로 균열이 생긴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하나의 예외로 반대 급부를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는 징크화이트 단독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사용한 작가의 테크닉이나 다른 물감이나 재료들과의 상호작용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른 모든 미술작품에서 그러하듯, 작품에서 생겨나는 화학작용을 현재의 모든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기에 그저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우리가 징크화이트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 질좋은 화이트를 과도한 밑칠로 허비하지 않으면서, 그 투명한 프리즘에 투과된 섬세한 빛의 스펙트럼을 향기롭게 즐기는 것 뿐인 듯 합니다.

     

     

      참고사이트

    http://www.naturalpigments.com/art-supply-education/zinc-white-oil-paint-colorhttp://www.kmska.be/en/Onderzoek/Ensor/ERP_LoodwitZinkwit.htmlhttp://www.webexhibits.org/pigments/indiv/history/zincwhit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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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니즈 화이트

     

        징크화이트 (3)

     

      징크화이트의 등장 

     

     약간의 이견은 있지만 유럽에서 순수한 금속 아연을 처음 분리한 것은 1746년 독일 화학자 마르그라프 (Andreas Sigmund Marggraf  1709~1782)에 의해서라고 여겨집니다. 마르그라프 이전에도 금속 아연 분리에 성공한 사례가 있는 것 같긴한대,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좀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처음 성공한 사람은 마르그라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연과 산화아연은 그 생산과정에서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처음에는 분리된 아연을 산화시켜 산화아연을 만들었는데, 이 방법이 조금 거추장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1758년에 가장 흔한 아연광석인 섬아연석을 구워 먼저 산화아연을 만든 후, 그것을 밀폐된 용기에서 숯과 반응시켜 아연을 얻는 방법이 개발되어 이 방법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산화된 아연을 다시 환원시켜 아연을 생산하는 것이지요.

     

    마르그라프

     

     산화아연을 백색 안료로서의 사용 가능성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1782년 프랑스의 기통 드 모르부(Guyton de Morveau)입니다. 그는 백색 안료에 대한 논문에서 연백의 대체제로 산화아연을 쓰자고 주장했는데, 당시 때마침 아연광산이 유럽에서 발견되어 그동안 인도나 중국에서 수입하던 아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그의 주장이 더욱 힘을 받았습니다.  연백의 독성 때문에 대체제를 찾다 발견된 산화아연은 화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당시에 보편적으로 쓰이던 연백보다 4배 정도 비싼 가격으로 인해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대로 사장될 것 같이 보이던 산화아연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후 드디어 안료로서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기통 드 모르부(Louis-Bernard Guyton de Morveau)

     

     

     

     모르부의 주장이 제기된 후 50년이 지난 1834, 지금도 물감생산의 세계 메이저 하나인 윈저 뉴튼 (Winsor and Newton) 에서 '차이니즈 화이트 (Chinese White)' 이름으로 산화아연으로 만든 백색을 수채화물감으로 출시하게 됩니다. 징크화이트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지금도 유독 윈저앤뉴튼 수채화 징크화이트는 차이니즈 화이트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차이니즈 화이트라는 이름은 18,19세기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중국 도자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별 뜻은 없는 이름인 듯 합니다. 당시 중국 도자기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 징크화이트의 색조는 자기의 흰색에서 연상되는 백색과 크게 연관은 없어보이는 것을 보면, 야심차게 새로운 물감을 내놓으면서 이목을 끌기 위해 과감한 이름을 한번 붙여본 것은 아닐까 하고 한번 생각해봅니다.

     

    병에 담겨 출시되던 초기 차이니즈 화이트

     

     

     이름이 다소 파격적이어서 그랬는지 기존의 연백의 위세가 워낙에 막강해서 그랬는지, 새로운 화이트의 등장에는 방해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차이니즈 화이트가 출시되고 3년이 지난 1837년, 바흐호프너(George H. Bachhoffner)라는 화학자가 자신이 발명한 플레미쉬 화이트 (Flemish White)가 차이니즈 화이트보다 나은 백색이라며 본인이 발명한 플레미쉬 화이트 쓸 것을 강력하게 화가들에게 권했습니다. 당시 바흐호프너가 예술학교 등에서 폭넓게 강의를 하면서 인지도를 넓혀 가고 있는 과학자였기 때문에 예술가들 사이에서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윈저뉴튼사로서는 차이니즈 화이트의 존속을 위해서는 회심의 일격이 필요한 상황이었지요. 

     

     윈저뉴튼 사는 결국 플레미쉬 화이트를 황화수소와 섞어보았고, 시간이 지나 흑색으로 변했음을 확인한 후 바흐호프너에게 공개적인 서한을 보내 차이니즈 화이트의 승리를 확인시켰습니다. 역사에서 징크화이트가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자리매김한 순간이기도 하지요. 플레미쉬 화이트가 연백의 단점을 보완한 화이트라고 선전했는데, 결국 그 또한 연백의 성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화이트였나 봅니다. 울트라마린이나 버밀리온 같은 황화수소가 포함된 안료와 섞였을 때 흑색으로 변색하는 연백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니 더이상 설 자리가 없게된 셈이지요.

     

    차이니즈 화이트

     

     한편 윈저뉴튼사에서 징크화이트를 당시 대세인 유화가 아닌 수채화로 먼저 출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산화아연의 색채가 너무 투명하고 차가왔기 때문에 기존 유화의 색조보다는 수채화에 더 적합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산화아연이 오일을 많이 흡수하여 유화물감으로 만들 때 오일이 기존의 연백보다 많이 필요로 했고,  그로 인해 건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유화물감으로 출시하기에는 걸림돌이 너무 많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백색안료로서의 안정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유화물감으로 제조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오일에 섞인 산화아연의 건조시간을 줄이기 위해 여러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1844년 드디어 프랑스의 르끌레어(Leclaire) 가 징크화이트를 '쓸만한' 유화물감으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르클레어는 산화아연을 산화망간과 함께 끓인 뽀삐오일과 섞어서 건조시간을 대폭 단축시켜, 1845년 대대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르클레어의 방법은 말하자면 오늘날 유화건조제인 시카티브 성분을 오일에 포함시켜 건조시간을 단축시킨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르클레어의 유화물감 출시에 힘입어 1850년대에는 전 유럽에 걸쳐 징크화이트가 생산되었고, 미국에 까지 퍼져 전세계적으로 생산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참고사이트

    http://www.webexhibits.org/pigments/indiv/history/zincwhit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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