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징크화이트 (1)

     

       빨래터의 위작논란

     

     

     가짜 그림, 즉 위작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위작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일은 분명 돈을 벌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임에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위작의 탄생과정을 잠시 머릿속으로 떠올리다보면 가짜와 진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기술자 아닌 예술가'의 모습이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가짜에 진짜의 숨결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예술가와 사기꾼 사이를 수없이 오고갔을 작가의 정체성 혼란과 그 낙차 큰 진폭 가운데서 탄생했을 섬세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잠시 떠올리노라면,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진짜를 방불케하는 테크닉은 오히려 가벼워보이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사실 그 위작 생산자는 닳고 닳은 사기꾼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뭐 그런 생각이 먼저 들곤 합니다.^^;;

     

     

     한편 위작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입장에서는 작가의 필치나 스타일 이외에도 사용된 재료를 분석하기도 하는데요. 정교한 위작은 원본의 재료를 너끈하게 재연해내겠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도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위작논란이 있었습니다.  지난 2007  박수근의 ‘빨래터’라는 작품의 위작 논란이 그것인데요, 위작논란은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여러가지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기도 하는데, 빨래터 사건도 그런 맥락과 결을 같이한 듯 합니다.

     

    빨래터. 박수근 작

     

     

     

     서울 옥션에서 경매가  45 2천에 팔린 뒤, 미술 잡지인 <아트레이드>에서 작품의 진위논란을 제기하여 결국 법정 공방으로까지 확대된 사건이었는데, 초기에 위작 논란이 커지자 서울옥션에서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에 감정을 의뢰하였고, 치열한 공방 끝에 결국 법정에서 ‘진품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차 감정 끝에 심사위원 20명 중 19명이 진품으로 감정하여 결국 2009 ‘진품으로 추정된다’는 법원의 판결로 마감하게 된 이 사건에서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위작을 주장한 국제미술과학연구소의 최명윤 교수의 위작 근거인데, 이제 다뤄볼 징크화이트가 여기에 등장합니다. 최명윤 교수가 당시 주장했던 근거를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박수근 기법 특성상 모든 유채작품들의 바탕을 탁하게 표현을 합니다. 또한 탁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징크화이트가 항상 반드시 들어갑니다.  문제의 빨래터 작의 바탕은 전혀 탁하지가 않으며 오히려 밝습니다.  또한 작품에는 박수근 특유의 마무리단계의 스모크 기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빨래터 작의 바탕에 칠해진 티타늄화이트의 특성상  빛의 현상을 표현하기에 매우 부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징크화이트의 경우 20년 이상 되면 자연적으로 균열과 박락이 생깁니다. 54년 빨래터 작을 보면 알겠지만 아낙네의 치맛자락에 박락 자국이 있어, 그 박락 자국의 밑바탕에 회초록이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징크화이트 특성상 50년세월 동안 아무리 보관을 잘해도 머리카락 같은 균열과 박락이 생겨야 정상입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문제의 빨래터 작은 변질과  균열이나 박락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티타늄화이트로 바탕이 구성칠 되어있기 때문이지요. 이건 70~80년대 만들어진 위작이고  존릭스 씨가 55년대 초반에 받았다는건 거짓말입니다.

     

     위작 논란과는 별도로 이 짧은 내용 속에는 이제 이곳에서 다루어질 징크화이트의 탄생과 발전, 또 그 한계에 대한 모든 내용이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사실 과언이 아닙니다. 미술은 예술가의 고뇌로 점철된 창조로 이루어져왔지만, 그것을 지탱해온 물질적 토대 중 하나는 분명 재료와 그 바탕의 과학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과학이 앞서서 이룬 그 부산물의 달콤한 열매가 예술의 창조로 이어진 경우가 허다하니 위의 말은 그 선후관계 뒤바뀐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건 주장의 포인트는 박수근의 표현 기법을 미루어 볼 때, 분명 박수근은 징크 화이트로 밑칠을 했을텐데,  문제의 작품에서는 징크가 아닌 티타늄으로 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티타늄이 소개된 시기는 1960년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징크로 칠했을 가능성이 높기도 합니다. 또 징크를 썼다는 증거로 작품에 균열과 박락이 없고, 배경과 마무리가 다른 작품과 달리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이 양반이 최명윤 교수입니다.

     

     

     현재는 아주 오래전부터 유화를 해오신 분들이 아니면 주로 수성인 제소로 밑칠을 하지만, 제소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유화용 화이트로 밑칠을 했습니다. 그리고, 티타늄보다는 징크를 밑칠용으로 많이 썼습니다. 물론 징크가 나오기 전에는 유일한 화이트였던 연백으로 했고, 징크가 출현하면서 점차 징크로 변해간 것이구요.

     

     현재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화이트는 징크와 티타늄인데, 징크는 혼색용으로, 티타늄은 흰색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오랜 세월 화이트의 대명사였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연백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차 새로운 백색에 자리를 점차 뺏기게 되고, 현재는 간신히 생산만 하고 있는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는데요. 그 연백의 위상에 처음 도전장을 내민 백색이 바로 징크 화이트입니다.

     

     참고사이트

     

    http://blog.daum.net/dununorg/15195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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