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니즈 화이트

     

        징크화이트 (3)

     

      징크화이트의 등장 

     

     약간의 이견은 있지만 유럽에서 순수한 금속 아연을 처음 분리한 것은 1746년 독일 화학자 마르그라프 (Andreas Sigmund Marggraf  1709~1782)에 의해서라고 여겨집니다. 마르그라프 이전에도 금속 아연 분리에 성공한 사례가 있는 것 같긴한대,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좀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처음 성공한 사람은 마르그라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연과 산화아연은 그 생산과정에서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처음에는 분리된 아연을 산화시켜 산화아연을 만들었는데, 이 방법이 조금 거추장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1758년에 가장 흔한 아연광석인 섬아연석을 구워 먼저 산화아연을 만든 후, 그것을 밀폐된 용기에서 숯과 반응시켜 아연을 얻는 방법이 개발되어 이 방법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산화된 아연을 다시 환원시켜 아연을 생산하는 것이지요.

     

    마르그라프

     

     산화아연을 백색 안료로서의 사용 가능성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1782년 프랑스의 기통 드 모르부(Guyton de Morveau)입니다. 그는 백색 안료에 대한 논문에서 연백의 대체제로 산화아연을 쓰자고 주장했는데, 당시 때마침 아연광산이 유럽에서 발견되어 그동안 인도나 중국에서 수입하던 아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그의 주장이 더욱 힘을 받았습니다.  연백의 독성 때문에 대체제를 찾다 발견된 산화아연은 화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당시에 보편적으로 쓰이던 연백보다 4배 정도 비싼 가격으로 인해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대로 사장될 것 같이 보이던 산화아연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후 드디어 안료로서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기통 드 모르부(Louis-Bernard Guyton de Morveau)

     

     

     

     모르부의 주장이 제기된 후 50년이 지난 1834, 지금도 물감생산의 세계 메이저 하나인 윈저 뉴튼 (Winsor and Newton) 에서 '차이니즈 화이트 (Chinese White)' 이름으로 산화아연으로 만든 백색을 수채화물감으로 출시하게 됩니다. 징크화이트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지금도 유독 윈저앤뉴튼 수채화 징크화이트는 차이니즈 화이트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차이니즈 화이트라는 이름은 18,19세기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중국 도자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별 뜻은 없는 이름인 듯 합니다. 당시 중국 도자기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 징크화이트의 색조는 자기의 흰색에서 연상되는 백색과 크게 연관은 없어보이는 것을 보면, 야심차게 새로운 물감을 내놓으면서 이목을 끌기 위해 과감한 이름을 한번 붙여본 것은 아닐까 하고 한번 생각해봅니다.

     

    병에 담겨 출시되던 초기 차이니즈 화이트

     

     

     이름이 다소 파격적이어서 그랬는지 기존의 연백의 위세가 워낙에 막강해서 그랬는지, 새로운 화이트의 등장에는 방해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차이니즈 화이트가 출시되고 3년이 지난 1837년, 바흐호프너(George H. Bachhoffner)라는 화학자가 자신이 발명한 플레미쉬 화이트 (Flemish White)가 차이니즈 화이트보다 나은 백색이라며 본인이 발명한 플레미쉬 화이트 쓸 것을 강력하게 화가들에게 권했습니다. 당시 바흐호프너가 예술학교 등에서 폭넓게 강의를 하면서 인지도를 넓혀 가고 있는 과학자였기 때문에 예술가들 사이에서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윈저뉴튼사로서는 차이니즈 화이트의 존속을 위해서는 회심의 일격이 필요한 상황이었지요. 

     

     윈저뉴튼 사는 결국 플레미쉬 화이트를 황화수소와 섞어보았고, 시간이 지나 흑색으로 변했음을 확인한 후 바흐호프너에게 공개적인 서한을 보내 차이니즈 화이트의 승리를 확인시켰습니다. 역사에서 징크화이트가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자리매김한 순간이기도 하지요. 플레미쉬 화이트가 연백의 단점을 보완한 화이트라고 선전했는데, 결국 그 또한 연백의 성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화이트였나 봅니다. 울트라마린이나 버밀리온 같은 황화수소가 포함된 안료와 섞였을 때 흑색으로 변색하는 연백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니 더이상 설 자리가 없게된 셈이지요.

     

    차이니즈 화이트

     

     한편 윈저뉴튼사에서 징크화이트를 당시 대세인 유화가 아닌 수채화로 먼저 출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산화아연의 색채가 너무 투명하고 차가왔기 때문에 기존 유화의 색조보다는 수채화에 더 적합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산화아연이 오일을 많이 흡수하여 유화물감으로 만들 때 오일이 기존의 연백보다 많이 필요로 했고,  그로 인해 건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유화물감으로 출시하기에는 걸림돌이 너무 많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백색안료로서의 안정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유화물감으로 제조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오일에 섞인 산화아연의 건조시간을 줄이기 위해 여러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1844년 드디어 프랑스의 르끌레어(Leclaire) 가 징크화이트를 '쓸만한' 유화물감으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르클레어는 산화아연을 산화망간과 함께 끓인 뽀삐오일과 섞어서 건조시간을 대폭 단축시켜, 1845년 대대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르클레어의 방법은 말하자면 오늘날 유화건조제인 시카티브 성분을 오일에 포함시켜 건조시간을 단축시킨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르클레어의 유화물감 출시에 힘입어 1850년대에는 전 유럽에 걸쳐 징크화이트가 생산되었고, 미국에 까지 퍼져 전세계적으로 생산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참고사이트

    http://www.webexhibits.org/pigments/indiv/history/zincwhit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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