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변주

     

     

          연백 (4)

     

      근대의 연백 제조

     

     연백 산업은 16세기에서 17세기 초반부터 급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제조방법에 대한 레시피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대부분 앞에서 살펴본 stack process 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18세기부터는 그 전까지 사용되었던 말의 분뇨 대신 삼나무껍질을 사용하기도 하고, 양자를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는데,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원활한 통풍과 배수를 위해 채택된 이 방법은 이후 효과를 인정받아 일반적으로 널리 쓰여지게 됩니다.

     

     

     

    한편 연백의 제조는  납중독의 가능성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로마시대 사람인 플리니우스도 연백 제조를 언급하면서 납중독의 위험을 경고했을 정도로 납중독의 역사도 연백의 역사만큼 짧지 않습니다. 17세기가 지나면서 연백 제조가 대량생산체제로 바뀌어감에 따라 노동자들의 몸이 마비가 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점차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산업이 되자 급기야 여성들까지 고용되었는데,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 1900년경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얼굴이 예쁘지 않아 창녀가 될 수 없는 처녀들은 납의 흰색공장에서 고통스럽게 몰락하는 길과 굶어죽는 길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당시 많은 여자들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익사는 여자들이 주로 선택했던 자살 방법이었다.”

     

     - 색의 유혹 1 (에바 헬러 저, 예담출판사) 중에서

     

     

    아래는 Stack Process 를 삽화로 그려놓은 그림들입니다. 연백 제조를 위해 stack을 준비하는 과정과 연백이 완성된 후 stack을 허무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이 그림에서 당시의 상황을 얼핏 엿볼 수 있습니다.

     

     

    stack 준비과정 <출처: patrickbaty.co.uk>

    </출처:>

     

     

    연백 수거 작업 <출처: patrickbaty.co.uk>

    </출처:>

     

     

    일반적인 케이스인지는 모르겠으나, 19세기 영국에서는 위의 그림에서처럼 stack을 허물고 연백을 수거하는 일은 그 위험성 때문에 꼭 남자만 하도록 했습니다. 납중독의 폐해가 커지자 영국에서는 규정된 복장 착용과 여성의 연백 수거를 금지하는 법안이 1883년과 1896년에 각각 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규정이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연백 제조는 최하층노동자들의 일이었기 때문에 산업혁명 시기의 무자비한 자본가들에 의해 그런 규정따위는 무시되기가 십상이었던 듯 싶습니다

     

    한편, 1900년대 초, 프랑스의 독극물학자 조르쥬 쁘띠는 프랑스에 있는 연백 공장에서 하루를 보내며 근로자들이 얼마나 예방을 철저히 하고 있는지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근로자들이 하루에 세 번, 새벽 6, 오전 9, 오후 3시에 납중독 예방을 위해 일제히 우유를 마셨다는 것입니다. 우유 속에 있는 칼슘 성분이 납의 독성을 해독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작업용 마스크조차 없던 당시에는 그나마 쓸 수 있던 대처법이었던 듯 합니다. 또 제조에 앞서 납을 가는 동안 옆에서 불을 피워서 상승기류를 통해 가루를 위로 날리며 흡입량을 줄이는 방법과, 연백을 수거 할 때 수거 전 물을 뿌려 미세분말을 가라앉힌 후에 작업을 시작하는 등의 방법을 써서 납중독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습니다.

     

     

    17세기부터 연백의 수요와 생산이 많아지면서,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법이 시도되었습니다. 연백 제조에는 납과 식초를 넣기 위한 화분 모양의 도기가 사용되는데, 납과 식초가 서로 닿으면 안되기 때문에 초기에는 화분 중간에 나뭇가지 두 개를 걸쳐놓기도 하고, 화분 안쪽에 턱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후에는 대부분 그림 Ⅰ 같이 안쪽 둘레에 턱이 있는 화분모양의 그릇을 만들어 아래에는 식초를 넣고, 위에는 납 코일을 올려 사용하다가, 1865년에는 그림 Ⅱ와 같은 부식 전용 그릇(corroding pot)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dutch process를 재현한 사진에서도 이와 같은 부식 전용 그릇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림 Ⅰ <출처: patrickbaty.co.uk>

    </출처:>

     

     

    그림 Ⅱ <출처: www.naturalpigments.com>

    </출처:>

     

    영국에서는 보다 많은 생산을 위해 여러층으로 stack 을 쌓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stack 위에 보드를 깔아 그 위에 똑같은 방식으로 stack 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여러 층을 쌓아 동시에 대량으로 연백을 제조하였는데, 대략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Stack Process <출처: patrickbaty.co.uk>

    </출처:>

     

    19세기에 들면 제조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방법들이 속속 등장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방법으로 Chamber Process 라는 것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Chamber 는 '방' 이나 특별한 용도로 만들어진 공간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Stack Process가 전통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과정이 번잡하고 상황에 따라 산출되는 납의 질이 일정하지 않은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원리에 부합하면서도, 이전의 단점을 보완하는 손쉬운 방법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Chamber Process 입니다. 큰 공간에 납을 띠 모양으로 잘라 아래 그림과 같이 걸어둔 뒤, 60도의 온도를 유지하면서 바닥으로 이어진 도자기 재질로 만든 파이프를 통해 습기와 이산화탄소와 아세트산 증기를 공급하여 연백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기본 원리는 이전의 방법과 다르지 않지만, 한결 편리하고 무엇보다 연백이 생성되기까지의 기간이 4~6주 정도까지 단축되었다고 합니다. 

     

    Chamber Process <출처: patrickbaty.co.uk>

    </출처:>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연백은 기존의 Stack Process로 만들어진 연백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이렇게 만들어진 연백의 색감이 훨씬 밝았는데, Stack Process 에서 사용된 삼나무 껍질, 분뇨 등의 물질에서 방출된 여러 이물질로 인한 변색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당연한 결과지만 그로인해 더 미세하고 균일한 입자의 연백이 생산이 되었고, 오일과 혼합했을 때 오일의 흡수력이 월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감으로 사용되었을 때 더 부드럽고, 확산력이 강해 이전의 연백과는 또다른 질감이 생성되곤 했다는군요. 그래도, 화가들은 Stack Process 로 만들어진 연백을 더 선호했다고 하는데, 오일칼라로 사용할 때의 질감은 그 어느 화이트도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현재는 많은 회사에서 오리지널한 연백을 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대가 많이 바뀌어서 연백을 사용하는 화가가 많이 줄어들기도 하였구요.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연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재 생산되는 몇개의 연백의 질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스스로 직접 만들어 쓰는 사람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는 paintingperceptions 라는 사이트에 소개된 Luis Martinez Borrero 라는 화가가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직접 연백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 사진들입니다.  마지막에 오일과 섞어놓은 화이트의 질감이나 색감을 보면 얼마나 왜 많은 화가들이 지금도 연백에 대한 향수를 잃지 않고 있는지 대충 알것 같기도 하군요.

     

     

    1. 아세톤으로 납의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2. 납을 잘라 조각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3. Stack Process 와 같은 방법으로 부식시킵니다.

     

    4. 납표면에 형성된 연백을 털어냅니다.

     

    5. 불순물 제거를 위해 분말을 물로 씻습니다.

     

    6. 물에 젖은 연백을 여러번 곱게 갈아낸 뒤 햇볕에 건조시킵니다.

     

    7. 건조된 연백을 오일과 섞어놓은 모습입니다.

    <출처 : paintingperceptions.com>

     

    참고도서

    색의 유혹 1 (에바 헬러 저예담출판사)

    참고사이트

    http://patrickbaty.co.uk/2012/08/01/white-lead/

    http://paintingperceptions.com/sounding-technical/the-great-lead-white-shor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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