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연백 (6)

     

       치명적인 흰색 가루

     

       납중독의 역사는 납의 역사과 그 결을 함께합니다. 납중독의 역사 역시 매우 오래되었다는 말이지요. 납은 지금도 여러방면에 사용되어지고 있지만, 독성 때문에 전통적인 용도였던 수도관, 안료, 가솔린 첨가제 등의 사용은 법규로 제한받고 있습니다. 현재는 주로 전지나 원자로의 방사선 차단제, 고압전선 피복제, 탄환 등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납은 라틴어로 'plumbum' 이라 했는데, 납의 원소기호인 Pb가 여기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배관공을 의미하는 영어의 plumber도 역시 과거에 수도관을 납으로 만든 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납이 이렇게 고대에서부터 사용되었던 것은 무르고 녹는점이 낮아 가공이 쉽고, 잘 부식되지 않기 때문인데, 특히 로마시대에는 수도관과 배관시설, 안료, 그릇 등에 두루두루 쓰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의 납중독이 로마 제국 쇠퇴의 한 원인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있습니다.

     

     

     

    로마시대 납 수도관 <출처:wikimedia commons>

    </출처:wikimedia>

     

     

    로마시대 납 배관 <출처: wikimedia commons>

    </출처:>

     

     

     

     납에서 파생되어 나온 연백 역시 납중독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연백의 수많은 명칭 중에 Venice White 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Venice White 보다는 Venice Powder 라는 말이 더 알려져 있는데, 이 베니스 파우더가 여성들의 화장용으로 쓰인 연백 가루 입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Venice Powder가 고급 화장품의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합니다. 연백이 도포력이 있고 부드럽고 유연해서 연백 가루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여성들의 화장용품으로 쓰여졌다고 하는데, 그 덕에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망가진 예는 밤하늘의 별만큼 수없이 많기도 합니다. 이집트에서 뿐 아니라 로마의 여성들도 이 백색가루를 매우 선호하였고, 일본의 게이샤들도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징그럽도록 새하얀 피부의 연출을 위해 이 납가루를 두껍게 발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치명적인 화장품의 폐해는 21세기에 들어서도 계속됩니다. 이 자리에서는 연백으로 흥했다 망한 몇가지 사례들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게이샤 화장 (2010년 쿄토) <출처: woosra.com>

    </출처:>

     

     

     

     

     

     납의 폐해로 나타나는 증상은 수없이 많습니다. 발암물질을 유발하기도 하고, 뇌졸증, 간질, 마비, 왜소성장 등 일일이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여성의 화장품으로 쓰인 이 연백 가루를 장시간 사용하면 얼굴이 창백해지고, 심해지면 신장 질환이나 변비등의 질병과 탈모 등의 증상까지 심해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미 유명한 사실입니다. 화장으로 인한 납중독을 언급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는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Elizabeth 1)입니다.

     

     

     

    Elizabeth 1,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상시에도 1인치의 두께로 얼굴에 연백을 발랐다고 알려져 있는데, 창백하고 하얀 피부를 과시한 여왕의 화장법이 귀부인들의 모범이 되었을 정도라고 하는군요. 당시 유럽에서는 새하얀 피부에 볼과 입술을 봉긋한 연지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화장이 유행이었는데, 이 연지 또한 수은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정말 목숨걸고 화장하는 셈인 듯 합니다.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피부가 거칠어지고, 납으로 인해 치아까지 상하게 되었는데, 노년에 그것을 감추려 더더욱 진하게 화장을 했다고 합니다.

     

    Maria Gunning (1733 - 1760) <출처 : wikimedia commons>

    </출처>

     

     코벤트리 백작의 부인인 마리아 거닝은 당대의 미녀로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베니스파우더를 바른 것으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결국 피부는 급격히 노화되었고, 자신의 피부를 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려워 자신의 방을 어둡게 하라고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30이 못되어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그가 죽었을 때의 모습은 대머리에 치아가 하나도 없는 추한 모습이어서 치명적인 연백의 폐해를 죽음으로 알렸다고 합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연백은 화장품으로 두루 제조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의 미국의 화장품 제조 회사인 레어드(Laird) 사는 블룸 오브 유스 (Bloom of Youth) 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생산했습니다. 이 회사는 당시의 패션 잡지 <뉴욕>에 만화형식으로 자사의 화장품을 광고하곤 했는데, 젊음의 비법으로 블룸 오브 유스의 파운데이션을 홍보했다고 합니다. 블룸 오브 유스의 화운데이션은 당시의 트렌드대로 연백을 사용하였는데, 결국 그 화장품을 사용한 사람들이 납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그 판매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Bloom of Youth 광고 포스터 <출처: wikimedia commons>

    </출처:>

     

    Bloom of Youth 광고 포스터 <출처: wikimedia commons>

    </출처:>

     

     화장품 이외에 연백은 페인트로서도 여러 폐해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벽이나 집에 사용되었던 흰색은 연백을 이용한 유성페인트였는데, 이 페인트가 노후해지고 벗겨짐에 따라 페인트에 있는 납성분의 유독물질이 논란를 일으켰습니다. 

     1907년 미국의 National Lead Company가 설립한 Dutch Boy라는 페인트 회사가 있습니다. 이름에서 느낌이 오듯이 이들은 공공연히 Dutch Process 를 표준으로 삼아 페인트를 만들고 있음을 강조하며 홍보했습니다. 주로 납으로 만드는 페인트를 생산했는데, 연백도 그들의 대표적인 상품 중에 하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위험성 때문에 1977년 주택이나 공공건물, 또 가구나 장난감 등 생활과 밀접한 물건에 연백 사용을 금지했는데, 그 이후로 연백의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이 회사는 Dutch Boy 라는 브랜드를 유지하며 페인트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물론 납성분이 없는 페인트를 만들고 있겠지요.  21세기 들어 미주와 유럽 지역에서 납성분에 대한 규제법안이 상정되고, 규제가 까다로워 지면서 현재는 위에서 언급한 몇몇의 제한된 분야에만 납이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Dutch Boy 광고 포스터 <출처: www.liveauctioneers.com>

    </출처:>

     

     우리나라에도 연백으로 만든 화장품이 있었습니다. 물론 납성분의 폐해로 오래지 않아 사라지긴 했습니다. 바로 박가분 (朴家粉)이 그것인데요, 다른 뜻이 아니고 박씨가 만든 분 이라는 뜻입니다. 박가분을 만든 사람은 보부상이었다가 포목상으로 돈을 번 박승직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박승직의 부인인 정정숙이라는 사람이 지금 충무로 근처인 입정동에서 한 노파가 이 분을 파는 것을 보고 아낙들을 모아 사업화 하여 큰돈을 벌었습니다. 방물장수를 통해 판매한 이 박가분은 당대의 최고의 히트 상품 중에 하나로 등극하기에 이르러 1920년에는 상표등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한갑에 50전이던 박가분은 하루에 1만갑 이상 판매되는 대표적인 화장품이 되기도 했는데, 당시에 볼 수 없었던 상자에 넣어 판매하는 포장방식으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1930년대가 들어서자 납성분이 피부에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고, 급기야 한 기생이 박가분으로 피부를 망쳤다고 고소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여 1937년 시장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박가분 <출처: www.much.go.kr>

    </출처:>

     

     

     

    참고사이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reativemd&logNo=120052840089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4&contents_id=25258&leafId=44

     http://ko.wikipedia.org/wiki/%EB%B0%95%EA%B0%80%EB%B6%84

     

     

    'white > cremnitz wh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번쯤 손을 내밀어  (1) 2014.04.30
    잎 속의 검은 잎  (0) 2014.04.30
    빛의 이면  (0) 2014.04.29
    반복과 변주  (0) 2014.04.28
    네 시작은 창대하도다  (0) 201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