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속의 검은 잎

     

          연백 (7)

     

       연백의 변색

     

     중국 서쪽의 둔황에 가면 둔황석굴로 알려져 있는 막고굴이 라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거대한 석굴이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관문역할을 했던 이 곳은 수천여개의 석굴에 불상과 벽화가 있는데, 현재는 보존을 위해 몇개만 개방하고 있습니다. 저도 십여년 전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몇개만 보여주더군요. 그 중에서 북위(北魏)나 북주(北周)시대에 만든 것으로 알려진 몇몇 벽화들에 나타난 불상들은 신기하게도 얼굴을 비롯한 손과 발의 피부가 모두 검은색으로 표현되어 있어, 섬세하게 그려진 옷과 주변 배경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서역에서 건너온 사람을 검게 그렸다는 말도 있었고, 새로운 기법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이 비밀은 연백에 있습니다.

     

     

    251번 굴의 아미타불

     

    57호 굴의 설법도

     

     연백에 포함된 납성분은 황을 만나면 검게 변색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이 포함된 안료가 의외로 많은데, 예전에 쓰이던 울트라마린이나 버밀리온 등 - 물론 지금의 물감튜브로 나오는 울트라마린과 버밀리온은 인공안료를 쓰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안료들이 사용된 곳이 검게 변색되었다면 연백의 소행임을 일단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연백이 불투명하고 밀도와 착색력이 좋아 예전부터 밑칠용으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위에 황이 포함된 안료를 사용하면 검게 변색 되기가 쉬운 것이죠. 또 대기 중에도 황산화물이 포함되었을 경우에도 -주로 오염된 공기안에 황산화물이 많습니다- 그 안에 포함된 황이 연백과 만나 검게 변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의 막고굴 벽화가 검게 변색이 된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이 벽화를 그린 화가들이 보살들의 피부를 밝은 핑크색으로 표현하기 위해 연분을 붉은색인 주사(朱砂)와 섞어서 사용하였는데, 수은과 황의 화합물인 주사가 연분의 납성분과 반응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검게 변한 것입니다. 주사도 역사가 매우 깊은 안료인데, 부적에 쓰이는 붉은색을 생각하시면 큰 무리가 없습니다. 결국 막고굴의 보살들은 고결하고 생명력이 충만한 싱그러운 피부를 자랑했었는데, 세월의 굴곡과 함께 숯빛으로 변한 셈입니다.

     

    Byzantine illuminated manuscript (1220) <출처 : www.webexhibits.org>

    </출처>

     

     위의 그림은 1220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비잔틴 시대의 성경입니다당시에는 텍스트에 곁들여 여러가지 아이콘이니셜장식삽화 등을 보충으로 곁들여 성경을 제작하였는데금과 은으로 장식을 한 것에서부터 위와 같이 그림을 그려 넣은 것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이것을 'illuminated manuscript' 라고 하는데 구태여 해석하자면 '장식된 원고정도가 될 듯 합니다이 그림에서도 보면 천사의 얼굴이 검게 변색이 되었습니다이것 역시 막고굴 벽화와 같이 피부색을 표현하기 위해 연백에 황이 포함된 붉은색 안료를 섞어 쓴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19세기 초 빅토리아 시대 때부터 대영박물관에 보관이 되었는데당시는 전기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박물관에서 가스등을 썼다고 합니다그런데이 가스등의 가스가 연소되면서 발생한 황화수소가 연백이 사용되어진 천사의 얼굴을 검게 물들인 것이지요

     

     황이 포함된 안료와의 접촉이 없어도 연백이 검게 변하기도 하는데이것은 주로 빛이나 높은 습도에 의해 갈색의 이산화납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그래도이런 경우에는 과산화수소를 살짝 칠해주는 것만으로 원래의 색으로 복구가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변색에서 생각해볼 점은 이런 변색이 주로 벽화나 서양의 프레스코화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중세 후기에 씌어진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입문서 중에 하나인 첸니노 첸니니 (Cennino Cennini) 가 쓴 <미술의 서(書) Il libro dell'arte> 에서 첸니니는 프레스코화의 재료로 연백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웅황 - 노란색 광물질로 이후 카드뮴 옐로우가 나오기 전까지 고급 노란색 안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울트라마린, 광명단 - 연백을 지속적으로 가열하여 얻을 수 있는 붉은색입니다-등과 함께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안료들은 모두 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변색의 위험성을 경고한 셈이지요. 그래서 과거의 프레스코화에는 연백 대신 석회질의 백악(白堊)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연백의 역사가 긴만큼 연백이 사용된 작품도 무수하게 많을텐데, 변색이 없는 작품도 매우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근대의 유화작품들에서도 연백은 많이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변색이 되지 않은 작품들도 많기 때문에 이런 의문이 더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화가가 사용한 안료의 역사와 특징에 대한 핸드북 Artists’ Pigments, A Handbook of Their History and Characteristics, Vol. 2 (Ashok Roy 저)> 라는 곳에서 이렇게 진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건성유와 혼합되고 바니쉬로 보호된 연백은 수세기의 시간동안에도 변색 없이 본연의 색을 내고 있다. 네덜란드의 초상화에 그려진 흰 칼라와 소매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연백은 황이 포함된 안료와 같이 사용할 수 없고, 같이 사용할 경우에는 검게 변한다고 하지만, 뚜렷하게 그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예시가 지금까지 전혀 인용되지 않고 있다. 오일 성분의 미디엄이 사용된 버밀리온과 섞인 연백은 아무런 변색 없이 수세기 동안 원래의 색을 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늘과 커튼 주름을 수놓고 있는 연백과 울트라마린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카드뮴황 계통의 안료와 혼색된 연백도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P.72)

     

    “Lead white locked in  drying oil film and protected with varnish endures for centuries without blackening; witness the white collars and cuffs in Dutch portraits. Although lead white is theoretically incompatible with sulfide pigments, and should form  black lead sulfide in contact with them, no glaring examples can be cited. Flesh tones, lead white tinted with red mercuric sulfide (vermilion) especially in oil-medium, have stood for centuries without change; as similarly mixtures with ultramarine in skies and draperies. Lead white mixed with cadmium-sulfide also seems unaffected.” 

      

    <출처 : 

    http://www.williamsburgoils.com/blog/?p=150>

     

     연백이 변색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연백 자체보다는 미디엄의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변색이 진행된 작품들은 대부분 수용성미디엄을 사용했다고 하는 연구들이 나온 것으로 보아 유성 미디엄을 사용하는 유화 작품 등에서는 연백의 변색 걱정을  크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벽화나 프레스코화 등에서 변색된 연백도 그러고 보면 수용성미디엄을 사용한 셈이니, 다른 영향으로 변색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미디엄이란 변수를 제외한 채, 단순히 혼색이 변색을 초래했다는 말은 틀릴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동양에서도 연분은 고대에서부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여러 명칭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호분(胡粉) 이라고 불리웠는데, 오늘날  한국화 물감에 끼어있는 호분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연백은 당토(唐土)라 부르기도 하고 서양에서는 차이나 파우더 (China Powder) 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연백을 가공하여 화장품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아교 등의 수용성 미디엄과도 잘 어우러져 사용이 되기도 했지만, 14~15세기를 전후하여 조개가루로 만드는 오늘날 우리가 호분이라 불리우는 그  안료로 완전히 대체되어 그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연백의 자취가 우리나라의 유물에서도 근래에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고구려 시대의 쌍영총 벽화고분의 일부인 기마인물상의 바탕칠에서 연백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서양에서 고대의 그림을 감정하거나 복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백이 매우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건 바로 고대의 그림을 감정할 때 X 선을 비추어 촬영하기 때문입니다. X선을 비추어 보면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단계적이고도 심도있게 분석할 수가 있는데, 납성분이 많을수록 X 선 촬영에 더 유리하다고 하는군요

     

     쌍영총 기마인물상 역시 X선형광분석기로 비추어 조사를 했는데, 윤곽선 내부에서는 납성분이 검출되었지만, 그 주변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스케치 안에만 연백을 칠했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벽화 채색물감에는 납성분이 없다고 하니, 밑칠에만 사용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고보면 연백의 발자취는 우리 나라에서도 꽤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쌍영총 기마인물상

     

    참고도서

    컬러여행 (빅토리아 핀레이, 아트북스)

    우리 그림의 색과 칠 (정종미, 학고재)

     

    참고사이트

    http://www.williamsburgoils.com/blog/?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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