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에서 눈꽃이 나리네

     

        연백 (2)

        

      Flake White 와 Dutch Process

     

    여기서는 대표적인 연백 제조법으로 알려져있는 네덜란드식 제조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방법은 많은 곳에서 인용이 되었는데,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책이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2005년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컬러여행’(아트북스, Victoria Finlay) 에서 저자가 그 과정을 재미있게 기술해놓은 것이 있어 잠시 소개해보겠습니다.

     

    " 네덜란드 화가들은 연백을 만들기 위해 두 개의 항아리를 준비했다하나에 납을 넣고 다른 하나에 포도주를 발효한 식초를 넣는다그런 식으로 수십 개의 항아리들을 준비한 다음 비밀 재료를 추가한다그 재료는 바로 목장에서 가져온 분뇨이다.분뇨를 항아리 주위에 쌓아놓는 이유는 열을 발생시켜 산을 증발하게 만들고이산화탄소를 배출시켜 초산연을 탄산연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였다완전히 차단된 방에 90일간 방치해둔 다음에는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 한 명이 들어가야한다.아무도 자진해서 들어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짚으로 제비뽑기를 할 수 밖에 없다.결국 길이가 짧은 짚을 고른 도제가 그 일을 맡게 되고문을 여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아마 그 일을 처음 맡았다면 더더욱 경악했을 것이다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탁하고 악취 나는 공기와 뜨거운 열기흐물흐물해져 사방으로 흐르는 배설물포도주의 시큼한 냄새와 금속의 독성이 마치 연금술사가 마법을 부린 현장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을 것이다그러나하얀색 침전물은 회색 금속에서 벗겨져 항아리 속에 고여 있었다그야말로 더러움과 악취 속에서 티 없이 깨끗한 하얀색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이렇든 배설물로 설탕을 만드는 일은 물감상자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작은 기적 중의 하나이다. "

                                                                 -      컬러여행, P. 174

     

     약간의 상상이 곁들여지긴 했지만대략 이런 방식으로 연백이 제조되었습니다이런 방식은 네덜란드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대략적인 과정은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전해내려온 방식과 비슷하지만약간의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긴 합니다이것은 차후에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에 Rublev (루블료프라는 유화물감 브랜드를 생산하는 Natural Pigment 라는 회사가 있습니다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사용되는 미술재료나 안료 등을 연구하고 재현하거나 만들기도 하는 회사인데, 러시아 성상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 (Андрей Рублёв  Andrei Rublev)의 이름에서 따온 듯한 브랜드 이름도 매우 특이합니다. 약 20년전 쯤  러시아의 거장 따르꼽스끼 영화가 거짓말처럼 개봉관에서 흥행할 때동명의 비디오로 출시되기도 했는데요난해함과 성스러움과 지루함이 시종일관 지속되는 뭐 그런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아무튼!

     

     이 회사에서 몇 년 전 실제로 이 네덜란드 방식을 재현해서 자사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별걸 다 재현한다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럽기도 하더군요이렇게 함부로 올리는 것이 저작권상으로 문제가 될 법도 하지만혼자보기 아까우니 일단 올려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Dutch process  Stack process 라고도 하는데보통은 후자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밑에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쉬운데납과 아세트산(강한 식초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을 화분 모양의 도자기 그릇에 넣어 부식을 시켰습니다그리고부식을 위해 그 도기를 삼나무 껍질과 분뇨를 섞어놓은 곳 위에 놓았습니다그 나무껍질과 분뇨를 섞어서 마련해 놓고 도기를 배치해 놓은 그 곳을 Blue bed즉 푸른 침대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stack은 그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16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시행되었던 제조법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하는데,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진 및 내용은  www.naturalpigments.com 에서 가져왔습니다.

     

    1.  먼저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헛간을 짓습니다.

     

     

    2. 불순물을 제거한 얇은 납판을 길게 잘라 나선형으로 말아놓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런 납조각을영미 지역에서는 버클(buckle) 이라 불린 납덩이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3. 준비된 도자기 그릇 높이의 1/3 정도까지 찰 정도로 식초를 넣은 뒤, 식초 위에 설치된 지지대 위에 코일형태의 납조각을 올려놓습니다. 납의 양이나 식초의 양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조건에 따라 도기 색깔을 붉은색과 흰색으로 차이를 주었으며, 부식과정의 차이를 보기 위해 전해내려오는 방법대로 몇몇의 도기에는 뚜껑을 덮었습니다.

     

    4. 근처 농가에서 모은 말 분뇨를 삼나무 껍질과 섞어 실험이 이루어질 곳에 깔아놓습니다. 원래 이 시기에는 분뇨만 쌓아 놓았는데, 18세기부터는 원활한 통풍과 배수를 위해 삼나무껍질과 섞어서 사용하는 방법이 쓰였습니다

      

    5.  그 위에 납조각들이 담긴 도기들을 차례대로 배열해놓습니다.

     

     

    6. 500kg 정도의 납이 실험에 사용되었는데, 이 납조각들이 부식하여 연백이 되는데는 약 12주 정도가 걸립니다. 분뇨의 부패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와  열에 의해 가열된 식초의 증기가 납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연백이라 불리워질 흰색분말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7.  2주 후의 모습입니다. 내부의 식초 냄새는 처음만큼 세지는 않지만, 여전히 강한 냄새를 유지하고 있고, 퇴비의 온도도 점점 상승하고 있으며, 내부의 습도는 매우 높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온도와 습도 유지가 부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의 유지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하는군요.

     

     8. 위의 사진을 조금 더 가까이 잡아 부식 정도를 살펴본 것입니다. 벌써 많이 부식이 되긴 했지만, 고르게 부식되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균일하게 부식이 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전사람들이 꽤나 노력을 했다고 하는데, 특별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9. 12주가 지난뒤, 연백을 납에서 수거하기 바로 전의 모습입니다. 부식이 더 많이 진행된 모습입니다.

     

     

    10.  가까이서 본 모습입니다. 납 코일의 윗부분을 따라 변색이 된 모습도 보입니다.

     

     11.   납코일을 망치로 두들겨 부식된 연백을 털어냅니다. 떨어진 연백의 모습입니다.

     

     연백의 명칭 중 Flake white 는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연백조각의 모습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각, 파편이란 뜻을 가진 flake는 우리가 시리얼이라 부르는 콘 플레이크 (corn flake) 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되는데요, 저 모습도 어찌보니 흰색 콘플레이크 같기도 한 것 같습니다.

     

    연백 조각들은 이제 물에 담가 불순물을 제거한 후에 햇볕에 건조를 시킵니다. 건조된 연백을 분말로 빻아서 안료로 사용하게 되는데, 요즘에는 기계가 좋아 아주 미세한 분말로 제조가 가능하지만, 예전에는 분말이 아주 곱지도 않고 일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연백의 질은 입자가 거칠었던 이전의 것이 훨씬 좋다고 하는군요. 

     

     대표적인 연백 제조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연백이 납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여러 위험 요소들이 존재하고, 그런 이유로 지금은 생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오늘 살펴본 제조법에 대한 약간의 부연설명과 함께 연백의 여러가지 다른 면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도서

    컬러여행 (Victoria Finlay 저, 아트북스)

     

    참고 사이트

    http://www.naturalpigments.com/art-supply-education/white-lead-historical

     

    http://www.geoffreylaurence.com/leadwhite.html

     

    'white > cremnitz wh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어도 좋아  (0) 2014.04.29
    빛의 이면  (0) 2014.04.29
    반복과 변주  (0) 2014.04.28
    네 시작은 창대하도다  (0) 2014.04.28
    화이트 오딧세이  (0) 2014.04.16